남들이 보는 나는 진한 눈화장과 어울리는 강철멘탈로

인생 아웃오브 안중 내 꼴리는대로 사는줄로만 알았겠지만

사실 나는 누구보다 속이 물렁하고, 상처투성이이며, 언제 찢어질지 모를정도로

아슬아슬하게 기워놓은 마음을 가지고 산다.

그런 나를 숨기고 남들이 나에게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가시덤불로 스스로를 둘러 보호하려고 했지만

결국 그 방어기제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사이 내 살을 뚫고 들어오며,

처음엔 그저 가볍게 누르는듯이 멍자국을 내다가 끓는 물속의 행복한 개구리처럼

살이 터지고 피가 줄줄 흘러 정신이 아득해지고서야 깨닫게 된다.

 

 

나에게 두번째 불안이 찾아왔음을.

 

 

인생의 숙적인 그것은 우아하게 웃으며 피투성이로 두근대는 내 심장을 손에쥐고 말한다.

 

오랜만이라고. 잘 지냈느냐고.

나를 잊지않아줘서 고맙다고.

다시한번 지옥에 온걸 환영한다고.

 

 

 

 


 

 

 

 

 

 

 

 

 

나의 첫 불안장애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봄에 찾아왔다.

내가 완벽한 딸인줄만 알았던 엄마의 기대에 짓눌려서 늘 속이 쓰렸고, 밥을 거의 먹지 못했고,

대중교통을 타는것이 무척 어려웠으며, 늘 현기증에 쓰러지고 죽을것만 같은 기분으로 죽지않는것을 반복했다.

부모님한테 말씀을 드려도 흔한 청소년의 투정같은것이라고 생각하셨는지 별다른 액션이 없었다.

그사이 내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 매 수업시간마다 양호실 가기를 반복했고,

아이들은 그런 나를 보고 웅성거리고, 선생님들은 그렇게 수업이 끊기게 되면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연예인들이 자신의 정신질환에 대해 편하게 얘기하고, 기안84가 시상식에서 약먹는 모습을 미디어에 노출해도

사람들은 그럴수 있지라며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때에는 공황장애나 불안장애가 흔하게 진단되지는 않았기때문에

나는 내가 무슨 질환을 앓고있는지 잘 알지 못했고, 그저 이 죽을것만 같은 순간이 찾아올때마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그것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빌고 또 빌었다.

투명한 창문이 답답하게 느껴지는것이, 밝은 등이 현기증이 나는것이,

친구들의 시선이 두려운것이, 옆자리 친구에게 손을 잡아달라는 나의 이상한 모습이

이 모든것들이 그냥 다 싫었다.

 부모님은 정신과에서 진료받은 기록이 있으면 보험에서 문제가 된다며 정신과 진료를 못하게 막았고,

나는 그저 혼자 견디어 내는것밖에 할 수 없었다.

제일 큰 문제는 거식증도 아니면서 불안으로 인해 소화가 잘 되지않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이었고,

결국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병원을 가게되었다.

 

 

"10까지 세보세요."

"하나, 둘.....아홉, 열. 다 셌.."

 

 

내가 모르는사이 의사는 긴 호스를 내 몸속에 넣어 내 위를 관찰했나보다.

 

 

"밥을 못먹어서 위액때문에 역류성 식도염이 조금 있네요."

"살고싶으면 토해도 드세요."

 

 

그렇구나. 살려면 먹어야 하는구나.

어린나이의 나는 그저 먹으면 살수있다는 작은 희망으로

불안을 숨긴채 꾸역꾸역 밥을 먹기 시작했다.

속이 안좋은것같은 순간이 여러번 찾아왔지만 토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이런 나를 보면서 내가 완벽한 딸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내 어깨에 힘주어 올려두던

두손을 내려놓으며 드디어 내 삶의 무게를 줄여주었다.

그렇게 불안을 이겨내고,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대학을 진학하고, 괜찮은 연봉을 받으며

외향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직장생활을 하며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최근 결혼준비를 하면서 이런일, 저런일이 꽤 많았다.

안좋은 일이 겹치고, 남자친구에 대한 믿음이 바닥을 치면서 혼자살까 생각도 했었지만,

그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그리고 이 사람이 아니면 아마 결혼은 못할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인생의 친구로써, 가족으로써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혼은 했는데 집이 없는것보다 집먼저 구하고 결혼은 천천히 준비하는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때문에

철저한 계획과 계산하에 집과 가전, 가구를 장만했다. 

예상치 못한 도움도 조금 받게되어 생활에 꽤 여유가 생겼고, 

이만하면 아 이제 집들이 좀 해볼까? 하며 설레던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눈앞에 초점이 맞지 않고, 숨은 분명 쉬고있었지만 숨을 쉬는것 같지 않은 기분이었다.

속에서 위액이 명치를 후벼파는듯이 쏟아졌고, 심장은 이례없이 두근댔다.

양말은 식은땀을 젖어갔고, 손이 발발 떨렸다.

순식간에 온몸에 열이 확 오르며 머리가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렇게 인생의 두번째 불안이 찾아온 것이었다.

괜찮다는 것으로 긍정하며 덮어왔던 불안이 결국 터져버린거다.

엄마에게 전화를 하며 손을 쥐었다폈다 반복했다.

정신을 잃지않기위해 계속해서 전화했다.

남자친구에게 나를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했다.

얼굴이 하얗게 뜬 상태로 팀장님에게 간략히 내 상태를 설명하고 조퇴를 했다.

병원을 가려고 남자친구를 기다리며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는데도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결국 비를 맞으며 오빠가 오고있는곳을 향해 걸었고,

마침내 오빠를 봤을때 이유도 없이 도로한복판에서 엉엉 울었다.

그냥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안심했다.

 

 

고등학교때의 나와는 다르게 지금의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이게 내 선택의 결과구나.

 

 

의사들이 아무 의미없이 묻는 괜찮냐는 물음에도, 친구들의 괜찮냐는 카톡하나에도

'괜찮냐'는 모든 물음에 나는 울었다.

괜찮다고 대답할수 없었다. 괜찮다는 사실 안괜찮아를 말하는거였다.

한달전부터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식사를 제대로 하는 날이 거의 없었고,

돈에 대한 생각으로 예비시댁을 떠올리면 속이 너무 쓰렸고,

코로나의 영향으로 계속 써오던 마스크가 너무 답답해서 출퇴근하는 대중교통이 힘들었고,

회사에서 발주가 없어 일없이 놀게된지 6개월이 되가는것이 걱정되었고,

급여가 안나올까봐 전전긍긍하는 그 순간과,

혹시 이 식욕이 없음이 갑자기 찾아오게된 불행한 생명일까봐,

그리고 이 모든것들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내 스스로를 옭아맨 강박이

내가 현실에 안심한 그 순간에 내 심장을 찢고 튀어나와버렸던거다.

 

 

하지만 두번째 불안을 맞이하는 나는 조금 노련해졌는지,

의사의 권유가 없어도 불안을 없애고자 내시경을 받아보고, 건강하게 밥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엄마에게 나의 상태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한다고 어필했다.

진단 결과 가벼운 우울증과, 약간의 공황, 그리고 불안과 강박이 있다고 했다.

그동안 쌓여온 그 불안함때문에 몸이 좀더 그런것을 잘 느끼는 체질화 된것같다고 했다.

난 나를 사랑하니까 우울증은 잘 모르겠고, 나머지는 스스로 컨트롤이 어려우니

약을 먹으면서 체질이 개선되도록 도움을 받으면 훨씬 좋아질것이라 했다.

사실 긴가민가 했지만 처음엔 출근도 어렵더니, 확실히 지금은 전보다 대중교통을 조금 더 잘 타는것 같다.

하지만 아직 한번씩 속이 쓰리고, 손발이 살짝 식은땀에 젖을때도 있다.

더위에 살짝 어지러울때쯤 심장이 또 두근대기도 한다.

 

 

두번째 불안은 그렇게 지금 내옆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나의 심장을 잡아먹기 위해서.

 

 

하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나의 불안이 어디서 오는지를 안다면, 조금더 쉽게 다스릴 수 있지 않을까.

또 내게는 나를 불안으로부터 지켜줄 사람들이 있으니까,

버티어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