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밤 골목을 비추는 주홍빛 가로등, 개짖는 소리, 냄새가 바뀌어버린 공기가

이 밤에 잠들지 못한 불쌍한 영혼과, 다소 시끄러운 노트북의 팬, 그 팬의 뜨거워지는 바람과 닮았다.

나는 그의 카톡을 기다리지만, 아마도 그는 잠든 것 같다.

잠들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핸드폰을 쳐다본다.


초등학교 운동회때 200원 주고 샀던 병아리같기도,

키운지 일주일만에 철창속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토끼같기도 하다.


이불을 적셔가며 울어도 화가나고

모진말을 쏟아내도 미안하다.


나는 버려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버려지는것이 너무 두렵다.








 














회사 사람중에는 감정을 잘 표현하는 M양이 있는데,

그녀는 화가나거나, 슬프거나, 힘들거나 하면 솔직하게 모든것을 표현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그것이 몸으로 새어나와 모든이가 그녀의 감정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충실하며

다른사람을 대할때 거짓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감정에 순수한 점이 많이 부럽다.

표현하지 못한 나의 감정들은 나도모르게 얼굴에 드러나버려서

보는 이도 불편하지만 그런 내 스스로가 가끔 한심하고 싫어질때가 있다.




요즈음의 나는 감정조절이 잘 안되는 것 같다고 느낀다.

늘 화가 나있고, 스트레스에 상시 노출되어있다.

아까는 일하다가 너무 화가나서 바람을 쐴겸 나왔는데, 

난간의 아래를 보고 문득 사람이 이렇게 충동적으로 자살을 하는거구나 하고 느낄정도로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그에게는 화를 내고 싶지 않은데 자꾸 화를 내게 되고,

업무얘기를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불필요한 논쟁이 오간다.

서로 아껴주기에도 1분 1초가 부족한 이 시간들을 그렇게 허투루 보내는 것만 같아 슬프다.

그리고 무엇보다 걱정되는것은 이런 내가 싫어지면 어쩌나,

그렇게 남겨지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남겨진다는것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 혼자만 하는 사랑을 가장 두려워 하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가장 비참하고 우울한 순간이 아닐까.


외동으로 자라서 어지간한 외로움 정도는 핸드폰처럼 늘 곁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의 이 외로운 감정은 나 혼자 견뎌내기에는 많이 아픈것같다.




욕심이 많은 탓인것을 안다.

예민한 내 성격도 한몫 하는 것 같다.

모두가 내마음 같지 않고, 모든것이 내 마음대로 되질 않아 생기는 화병일 것이다.

기대가 너무 많았던걸까.

내 감정이 하는 말들을 바쁘다는 핑계로, 괜찮은 척 하느라

무시해온 결과가 이렇게 밀어 닥치고 있다.




 퇴근길 집앞 골목 어귀에 세워진 트럭 뒤에 숨어서 몰래 소리도 없이 울어내던 내가

유리창에 너무도 처량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발소리에 울음을 멈추고 두리번 두리번.


울고싶은 순간조차 마음대로 울지 못하는 어른이.

회사에서는 울고싶지 않았던 애늙은이.






오늘은 정말, 그 어떤것을 해봐도 괜찮지가 않다.


진짜 안 괜찮다.


 그리고 버려질까 너무 두려운 새벽이다.

그러니까 잠시 운동화끈을 고쳐맬겸 주저앉아버리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