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된 아날로그 스타일의 책을 보는 사람.

요즘같은 시대에는 다 멸종된줄 알았는데 그 사람이 나와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소주병이 늘어갈수록 오히려 그에게서 

드립커피를 닮은 그런 따뜻한 냄새가 나는것만 같았다.

희고 고운 손으로 한장한장 바스락 거리며 책을 넘기는걸 상상하니

그 손이 또 얼마나 잡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문득 장난치며 악수하듯 손을 내밀때는

그 손이 너무 얄미워 꼬집고 싶기도 했다.

빨갛게 물들어버려라! 하고.

내마음도 그렇게 물들만큼 좀 따끔하니까.

그때의 나는 나 혼자 일방통행인것만 같아서 의도치않게 그에게 많이 휘둘렸던것 같다.

내 마음에도, 그의 장난에도.

그래도 말이야, 나는 나처럼 종이로 된 책을 읽는 사람이 좋거든?

그러니까,

 

 

 

 

"읽고 싶은 책이 하나 있어."

 

 

 

"뭔데?"

 

 

 

달콤한 신혼의 모든 순간을 말하는 책.

희안하게도 그 책에 나오는 일러스트들은 마음에 아지랑이처럼 현기증을 피어올렸다.

특별히 마음속에 콕 박히는 부분이 있다기보다는

사랑으로 결혼한 아름다운 과정이 잔잔하게 흐르기 때문인 것 같다.

 

 

 

그가 연차를 내던 날, 그는 연인사이도 아니었던 나와 저녁을 먹으러 오겠다고 했다.

나에게 줄, 내가 읽고 싶다고 했던 책을 가지고.

장난처럼 툭 던진말에 정말 편지를 써오기도 하고,

또 너무 진지하지 않게 영국식 유머를 담은 내용으로

두근대는 나의 마음을 한순간에 무장해제 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 혼자 읽을것만 산것처럼 해놓고 사실은 나에게 줄 몫까지 2권을 샀다는게,

그 책을 핑계로 쉬는날 나를 보러 왔다는 사실이 진정되었던 가슴을 다시 뛰게 하기도 한다.

그는 나와 사귀기 전에 이 책을 읽고 나와의 연애를 상상했을까?

나는 이 책을 당신과 사귄다음에야 제대로 정독할 수 있었어.

우리가 아무런 관계도 아닐때 책을 보면서 감히 신혼생활을 상상하기엔 내 양심에 가책이 느껴졌으니까.

그리고 비로소 지금에야 나는 그와 함께하고싶은 순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5분만.

1시간을 통화해도 꼭 10분밖에 흐르지 않은 것만 같다.

같이 술을 마시면 얘기하느라 시간가는줄 모른다는건 당신과의 시간에만 쓸 수 있는 말인것 같아.

잠깐만 쳐다봐도 시간은 왜이렇게 빨리만 흐르는지.

 

 

 

오늘 나가지 말자.

당신과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순간.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공기.

우리가 채우지 않아도 바람이 커튼을 펄럭여주고 고양이가 아는척 해주는,

TV가 대신 말해주고, 서로의 숨소리가 사랑을 전하는 그런 순간.

그런 순간에 마주보고 미소지을 수 있는 우리.

 

 

 

두근두근 신나는 장보기.

아마 당신은 나보다 훨씬 섬세해서 제품 뒷면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만 같고,

그러면서도 의외로 불량식품에는 관대할것만 같은.

그러다 문득 둘이 와인코너에 멈췄을때 그 자리에서 1시간은 떠나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

서로의 로망에 대해 생각하면서 오늘은 와인을 따야겠다고,

오늘은 조금 뜨거운 밤을 보내는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각자 한병씩 심혈을 기울여 골라 담는 욕망의 레드와인.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

왼손잡이는 변태라던데, 어쩌면 그것도 맘에 드는지.

각자 나란히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다는건 또 얼마나 큰 행운인지.

나는 아직 당신이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것조차 보지 못했는데.

나에게 있어서 당신의 왼손은 조금 특별한 느낌이거든요.

 

 

 

각자의 점심시간.

방금전에 카톡하면서 알게된 서로의 눈치게임.

나는 당신이 담배를 피우러 가는 시간을 노리기위해 귀를 한껏 세우고

당신은 양치질을 하러 가는 나와 마주치기 위해 담배를 피우러 간다.

식판을 들고 내 뒤에 서면 괜히 뒷통수가 잘 정리되어있나 신경쓰이고

내 뒤에 앉아 밥을 먹으면 괜히 한번더 TV를 보는척 뒤돌아 보고싶다.

잔반처리를 하러가는순간에 둘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너무 의식되서 고개도 못들었었고,

괜스레 잘 하지도 않는 내기에 끼면서

당신과 좀더 점심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었어.

 

 

 

수고했어 오늘도.

당신은 내가 오늘 하루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건 단점도 많지만 장점도 많은 것 같다.

많은 부분을 공감해줄 수 있고 특히나 당신이 나에게 수고했다고 해주는 말은

연인으로써 수고했다고 해주는 말임과 동시에 나의 고통을 아는 대리가 해주는 말이기도 하니까.

진정한 위로가 되는것 같다.

따뜻한 커피에 초콜릿을 퐁당 녹여낸것처럼 달달하다.

 

 

 

 

 

 

 

그가 나에게 말을 걸었던 그날, 그 순간부터

마치 난 중력처럼 그에게 이끌렸다.

버둥거릴 새도 없이 내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도 끌려간다.

그와 손끝이라도 닿고싶다고 생각한 것만으로 입술을 포개어 버렸고,

깨어있는 시간동안의 내 신경은 온통 당신에 대해 쏠려있으니,

뉴턴은 사과로 중력을 발견하고 나는 그에게로부터 만유인력의 힘을 배운다.

 

 

 

 

그래서 요즘이 그래요.

당신과 있는 요즘이,

구름이 껴도 맑은 그런 만유인력같은 나날들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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