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할때 블로그 글 읽는것은 요즘 내 낙이다.

책은 읽으면 끝장을 봐야할거같아서 좀 그렇고 칼럼류는 내가 지식이 모자라서 그런지

너무 전문적인 글들이 많아서 이해도 어렵고, 공감도 잘 안되는거같다.

어려운 단어와 문장들을 써가며 외국의 어떤 교수의 논문과 글들을 인용해

시크한척, 센치한척 마무리를 짓는것으로 끝나는 칼럼들은 솔직히 말하면 내생각엔 좀 자기자랑을 하는 글인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블로그 글을 출퇴근길에도 자주보고, 집에서 뒹굴거릴때도 뒤적거리는게 습관인데,

최근에 올라온 이웃님 글의 주제가 바로 첫사랑이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막 졸업할 무렵에 졸업앨범과는 별개로 각 반에서 문집같은걸 만들어서 나눠주었는데,

거기에 한 아이에 대해 내 열정을 담은 고백글(?)이 있다.

그때당시엔 그아이가 참 너무 좋아서 거의 1년간을 짝사랑했었는데

나는 이걸 '첫사랑'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단순히 '좋아했던'것으로만 생각한다.

 

 

일본어로 '스키다요(좋아해)' 하고 '아이시떼루(사랑해)'는 좀 다른데

보통 젊은층들이 스키다요를 많이 쓰는 이유는 육체적 관계를 조금 배제한 느낌이고,

아이시떼루라고 하는것은 성인들이 주로 쓰는 보통 암묵적으로 성관계를 포함한 사랑해라는 의미라고

중학교때 (야매로) 배웠다. 그래서 함부로 아이시떼루라고 하진 않는다고.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일본 감성 로맨스 영화를 보면 '스키'라고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어쨌든 어느정도 자아가 잡히기 전에 가슴앓이라기보다 그냥 단순히 그 아이가 좋았다는건데

그래서 그런지 나는 그 아이를 첫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뭔가 그아이를 막 어떻게 손을 잡아보고 안아보고 싶고 그런게 아니라 약간 아이돌처럼

그냥 보는것만으로 좋았달까. 가끔 나랑 썸씽으로 엮이면 더 좋았던 정도?

더구나, 솔직히 내가 좋아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도 그냥 엄마가 쟤 괜찮지 않니? 라고 하니

그때부터 그 말때문에 자꾸 그 아이가 눈에 들어와서 점차 좋아하게 되었던 거 같다.

마치 주문에 걸린것처럼!

 

 

휴.. 지금와서 하는말인데 내가 그 당사자 애였으면 진짜 스트레스 받았을듯.

내가 어느 정도였느냐하면 1년동안 자기 좋다면서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고 자기만 보면 좋다고 따라다니고

학급문집에다가 걔랑 결혼하겠다고까지 대문짝만하게 써놨었다.

내가 5학년쯤에 지방으로 잠시 전학을 갔다왔는데, 전학가있는 동안에 빼빼로데이에 걔한테

초콜렛 택배까지 보냈었다. 물론 걔도 받은게 있어서 그런지 나한테 초콜렛을 보내주긴 했었지만.

근데 아직도 의문인건, 얘가 나한테 은근 밀당을 했었다는거다.

초등학생 주제에 당겼다 미는게 아주 노젓기 저리가라 수준이었는데,

내가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렛주고나서 화이트데이에 그 애한테서 답초코를 받을때 그 애가 편지를 같이 줬었다.

내 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이건뭐 PH7.0 느낌의 편지였는데 그때당시의 나는 아마 너무 순수해서 

어장당하고 있는것도 몰랐나보다. 걔도 어장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던거 같구.

아무튼 진짜 미안해. 사과할게. 너무 피해를 준것같아서 아직도 종종 미안한 마음이 든다.

걘 학급 문집 볼때마다 내 생각이 날꺼아니야.. 그냥 웃어넘겨주면 좋겠다.

 

 

예전부터 누군가와 첫사랑에 대해 얘기를 할때,

나는 항상 누구를 첫사랑이라고 해야하는지 딱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서

그 순간에 그냥 떠오르는 아무나를 가지고 첫사랑이라고 이사람 저사람 말했던거같다.

그 애가 아니라면 내 첫사랑은 누굴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그나마 첫사랑에 가까운건 그녀인것같다.

 

 

중학생이 되어서 우연한 친구의 소개로 알게된 친구 N.

그녀의 첫인상은 흔히말해 약간 흡혈귀 같았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에 나보다 키가 조금 더 컸고, 숏컷에 팔짱을 낀채로 날 내려다 보았는데,

그 눈빛이 진짜 좀 서늘하면서 눈매가 길게 쭉 빠져서는 마치 만화 캐릭터같았다.

예쁘다는 생각보다는 좀 신경이 쓰이는 얼굴이었다.

그녀와는 그림을 그리거나 만화를 보는 취미도 같았으며, 일본 노래를 듣는 취향까지도 같았다.

이거 어떠냐고 들려주면 그친구는 자기 mp3에도 있다면서 보여주곤 했었다.

여자인 친구였지만 숏컷을 한 느낌이 아무래도 중성적인 매력이 있었기에

나는 나도모르게 점차 그친구와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실 N은 외모처럼 남자보단 여자를 더 좋아했고, 심지어 여자친구도 몇명 만났다.

나도 그녀가 좀 좋다고 느끼던 감정이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우리관계는 친구이상의 관계는 형성되지 않았다.

내가 선을 그은것인지, 그녀가 선을 그은것인지는 모른다.

그런상태로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저 N과 함께 어울려다니는 친구였고

N도 나를 편한 친구정도로 생각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그녀가 다른 여자와 만나는 때에도, 셋이보거나 여럿이서 만나면서

나는 그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는 우정 깊은 관계였다. 아마 나는 이때도 아직 그녀가 좋아서

그녀 옆에 계속 머물면서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했던거같다.

실제로 N이 고등학교 1학년때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에 만취해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뒹굴때에도

내가 집에 데려와서 씻기고 재워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고 3때쯤인가에는 N이 유학을 갔는데, 그때도 나는 꼬박꼬박 그녀의 별거아닌 메일에도 하릴없이 답장을 해주었다.

 

 

우리의 좀 특별한 우정은 대학교때까지 이어졌다.

그녀는 20살이 넘어서도 여자친구를 사귀었는데, 그때 당시의 내 남자친구와 그녀의 여자친구,

그러니까 총 여자 셋에 남자 한명이 만나서 같이 밥을 먹었다.

내 남자친구에게는 그녀들이 사귄다고 얘기를 하고 만났던 터라 편하게 만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남자친구 참 대단해. 여자끼리 만난다는데도 편견없이 봐줬으니깐.

그 후 나와 N 둘다 혼자가 되었을때, 그때까지도 나는 그녀가 좀 좋은것 같아서

둘이서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하다가 내가 그녀 입술에 뽀뽀를 했다.

10년 가까이 된 오랜 친구가 뽀뽀를 하니 N도 조금은 당황했던지 나에게 물었다.

 

 

"왜그래? 취했어?"

"응. 취했나봐. 근데 예전부터 뽀뽀는 한번 해보고 싶었어."

"그래서 어떤데?"

"차가워."

 

 

실제로 그녀의 입술은 차가웠고, 그다지 좋은 느낌도 아니었다.

마치 '너하고는 그런 관계이고 싶지 않아' 라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쓰렸다.

그 후로 그녀와는 다시 만나지 않고있다. 가끔 내가 술에 취해서 연락을 하거나 한적은 있었지만

그녀는 절대로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원래도 연락을 먼저 하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그날의 일을 계기로 안하는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한다.

 

 

이렇게 글을 써보니 쓰면 쓸수록 N이 첫사랑이 맞는것 같다.

아직도 가끔 보고싶고,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고, 연락이 닿을듯 말듯 먼저 하기 어려운 느낌.

물론 이제는 다시 봐도 그냥 친구사이겠지만 첫사랑이라는 느낌을 갖게 해준것은 그녀가 처음인것같다.

아마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내가 담배피우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것도,

그녀가 학생때부터 담배를 피워서 담배냄새가 많이 익숙해진 덕분이겠지.

그래서인지 말보로를 보면 가끔 니 생각이 나.

 

 

 

 

이제 누군가 나에게 첫사랑을 물어본다면 너에 대해 말하게 될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