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겨울이라 말한다.

반대로 가장 싫어하는 계절을 고르라고 하면 또 주저없이

봄이라고 말한다.

 

 

사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여름은,

나에겐 그리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마와

그 여름이 주는 지독한 더위 속 작은 바람하나로 채워지는

한여름 밤의 꿈같은 계절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여름을 가을보다 더 좋아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애매하게 따뜻하고, 애매하게 시원한것보다는

더울땐 덥게, 추울땐 춥게.

마치 나의 연애도 뜨거울땐 뜨겁게, 돌아설땐 차갑게.

그리고 나의 겨울을 밀어내며 다가오고있는 이 봄날은,

누군가에겐 정말 '봄날'같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봄이란,

 

 

'되돌아 봄'

'다퉈 봄'

'다시 사랑해 봄'

 

 

마냥 좋은순간들만 있을것만 같았던 우리도

조금은 우울해지는가봄.

 

 

 

봄이 문제인듯.

 

 

 

 

 


 

 

 

 

 

 

 

 

 

 

 

 

 

 

올해의 겨울은 너무 안추워서 속상하다.

나는 겨울에도 아이스크림을 먹고 한여름 뜨거운 라면국물에도

찬밥대신 뜨거운밥을 넣어먹는 천상 극단적인 여잔데.

 

 

 

그래.

그는 특별하게 잘못한 것이 없다.

 사실은 아마 내가 생리를 곧 앞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회사 프로젝트의 스트레스로 인해 신경이 곤두선 상태인것도 있겠으며,

그리고 아마 이제는 사귀고서 한달여가 조금 지나

자신의 본모습이 슬슬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와 만나기 전부터 나는 사실 그에게 조금 많은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동안 만나온 남자들과는 다르게 생각의 범위와 깊이가 다른 점.

바르고 단정하게 옷을 입고 다니는 점.

데오드란트 없이 외출을 잘 하지 않을 것같이 깔끔한 점.

그리고 그동안 나와 비슷한 벌이를 해왔던 남자들과는 다르게

회사에서 인정받는 소위말하는 능력있는 남자. (A.K.A 돈잘버는 남자)

나에게 다정하고 관심이 많은 남자.

내가 애기가 될 수 있게 품어주는 남자.

손가락이 야한 남자.

 

 

하나같이 다 내스타일이었고 싫어할 이유는 뭐 어디에도 없는것같다.

실제로 그와의 연애는 참 재미있는게 또 내기를 하면 대체로 둘다 필사적이어야

서로를 이길 수 있다는 점도 한몫.

뭘 하자고 해도 빼지않고, 어디를 가자고 해도 싫다는 말한마디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런 완벽하게 빚어놓은 다비드상도 시간이 지나면

금이가고, 틈새가 벌어지게 되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누군가를 또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는 일은 이제 거의 안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또 다시끔 이 사람을 누군가와 비교하고, 잣대를 세우고 있는거 같아 미안하면서도

내가 살아온 삶에서 세워진 기준은 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연락이 뜸하면 그 시간을 참지못하고

그사람과의 카톡을 천천히 올려다보는게 버릇이다.

마구 대화할때는 눈치채지 못했던 부분이나,

혹은 그 대화를 나눴던 때의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하는 행동인데,

오늘 카톡을 보니, 갑자기 조금 우울해졌다.

그리고 N이 답을 주지 않을걸 알면서도 검색해봤다.

N의 답변은 이랬다.

 

 

 남자는 사귀기전에는 그여자와 잘해보고싶은 마음에

평소의 자신과는 다른 열정을 보이게 되죠.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과잉행동인데,

이 시간이 지나서 그 여자와 사귀게 되면

그때부터는 서서히 자신의 본모습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로부터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이 본모습을 보며

남자가 변했다고 생각하죠.

 

 

 

참 너무 예상했던 말이고, 맞는말인걸 알면서도

'이 남자는 안그럴줄 알았는데..' 하는 마음이 커서

저 말이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물론, 반응은 바로바로 온다.

내가 평소와 다른 감정이라고 조금은 표현을 하니까.

아마 내가 서운한 티를 안내는 순간은 정말 사랑하지 않을때가 아닐까.

사랑하는건 마음을 쓰고 감정을 쓰는 일인데,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스스로 구태여 힘든 감정을 만드려고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늑대들의 특성인건지는 몰라도, 상황이 심각해지기전까지는

눈치를 못챈다는것이 또 서운하기도 하고.

그는 이 글을 읽으면서도 카톡을 올려다보며 뭘 잘못했을까라고 생각할걸.

 

 

 

그리고 사실 몇일전의 섹스에서 나는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내 생애 섹스라이프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생리중에 섹스를 해도 그만큼의 피를 본적이 없었는데,

무슨 일인지 나는 생리중도 아니었던 그날 정말 다량의 피를 흘렸다.

침대 시트에 묻은 피가 왠지 창피했고,

그의 다리사이에 흥건한 피가 현기증이 났다.

내가 애도 아니고 그동안의 성생활이 있는데

뭔가, 어른으로써 모자라서 생긴 일만 같았다.

걱정하는 그를 뒤돌게 하고 샤워기앞에 쭈그려 앉아서 질속에 손가락을 넣어보았는데

정말 선홍색 피가 손톱사이에 맺혀서는,

얼마나 방금 막 나왔는지 알 수 있을정도로 그 흔한 피비린내조차 나지 않았다.

그와 잠자리를 하면서 가끔 피가 나긴했었는데 한두번이지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말았었는데 손바닥에 흥건한 피를 보니까

갑자기 내 스스로가 너무 바보같았달까, 안쓰러웠달까.

뭐 특별한 병이 있는것 같다기보다는, 아마 체위의 문제일거라고 거의 확신하긴 했지만

어쨌든 갑자기 변해버린것만 같은 내 몸에 당황스럽기도 했고.

그를 내보내고 혼자 다시 쭈그려 앉아 조금 멍하게 있었다.

그는 굉장히 미안해 했지만, 신경써주는게 고마워서 괜찮은척을 했더니

오빠는 괜찮아진것 같았지만 사실은 내가 안괜찮았던거같다.

 

 

산부인과를 같이 가보기로 했지만,

사실 이런얘기 엄마한테 편하게 할 수 있는 딸은 나를 제외하곤 거의 없을껄.

내가 이렇게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큰게 아니었다면

난 아마도 이문제를 가지고 혼자 꽁꽁싸매고 있다가, 막상 병원가서

검사를 해야한다고 했을때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한테 사실을 말했겠지.

그리고 뒤늦게 그에게 말하며 내 잘못도 아닌데 그의 눈치를 봤을수도.

일반적인 커플이라면 아마 이랬을수도.

그는 아마 이런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것 같고.

 

 

 

마음이 복잡하다.

지금도 우울하고,

그는 변한것 같다.

정확히는

원래대로 돌아오는 중인것 같다.

 

 

하지만 갭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좀,

힘들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