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내 인생이 별다른 큰 일없이 남들 하는만큼, 사는만큼

딱 그정도의 일들만 있었다면 다시 이곳에 돌아와서 글을 쓸 생각은 하지 않았을거다.

일기는 왠지 모르게 기쁜일보다는 슬픈일을 더 많이 쓰게 되는것 같다.

마음을 둘 곳이 없어서인건지, 마땅히 어디다 하소연 할 곳이 없어서인건지

어쨌든 어딘가 소리칠 만한 곳이 없으니 침묵의 외침이라도 쓸밖에.

이럴때만 찾아오는 내가 스스로도 간사하다고 생각하지만 뭐 어쩌겠어.

 

 

 

 

헤어졌는걸.

 

 

 

 

 


 

 

 

 

 

 

 

 

 

 

 

 

 

같은사람과 두번의 연애를 하게되면 꽤 편한 구석이 있다.

썸과 같은 설렘은 없어도 이미 알던 사람이니 친구처럼, 연인처럼, 어쩌면 가족처럼.

불필요한 밀고 당기기같은 탐색전은 애써 할 필요도 없다.

첫 연애때보다 확실히 덜 싸우고, 좀 더 이성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도 알게된다.

한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만큼 혼자였던 그 힘든 시간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기때문에

더욱 노력을 한다고나 할까, 애틋해진다고나 할까.

 

 

 

다시 재회하고 나서 그와 나는 몇번의 갈등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잘 이겨냈고

우리는 드디어 '결혼'이라는 글자 앞에 섰었다.

식은 나중에 올리더라도 결혼할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집을 구할 좋은 기회가 생겼고

나는 한동안 그 문제에 미친듯이 빠져 살았다.

분양을 알아보고, 모델하우스를 찾아가보고, 카페글에 알림설정도 해놨다.

내가 알아본 곳은 요즘 매우 핫한지역이었고, 여러가지 호재로 볼때 분양만 받는다면

시세차익을 단돈 100만원이라도 얻을것이 확실했다.

성격이 성격인지라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정보들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했고

어떻게보면 그런식으로 그를 닥달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가진것이 별로 없었다.

처음엔 사랑이 없었다.

처음 연애때 나는 그에게 사랑을 갈구하다 싶이 했었는데,

그의 사랑과 나의 사랑은 좀 많이 달라서 참 힘든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사랑이 생겨나니, 돈이 없었다.

그의 가족들은 입에 담기 어려운 액수의 빚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집에 급여의 40%가까이를 보태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비록 물려받을 재산은 없지만 빚도 물려받지 않을 수 있다며

변호사 지인에게 의견을 구하러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이라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우리 부모님께 그의 얘기를 어렵고 솔직하게 꺼냈고, 다행히도 부모님은 눈감아주셨다.

그렇게 잘 해결되는 듯 했지만, 빚이 해결되고 나니 다음은 건강이 문제였다.

최근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그는 입원을 했었고, 일주일만에 퇴원은 했지만 결국

6개월정도 더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차후에도 면역력이 약해진다면 혹시 재발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병원비가 500만원가까이 나왔다.

보험처리를 하고 국가에서 지원금도 나와서 그는 금전적 손해는 없었지만

대신 마음의 병을 얻어버렸다.

 

자신감, 자존감, 희망, 미래.

 

그에게는 그 어떤 긍정적인 말도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도 옆에서 애써 태연한척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나조차 불안한데 진심으로 위로가 될리가 없었다.

그렇게 점점 그와 나는 서로에게 내색하지 않은채 피폐해져갔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내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자고 제안했고

돈이며, 건강이며 온갖 현실에 부딪히며 벼랑끝에 내몰린 그는 결국 나를 보자마자 울어버렸다.

 

 

 

3시간을 카페에서 마주앉아 울었다.

나아지는것이 없었다.

우리는 각자가 서로 현실의 벽에 계속해서 부딪혀왔고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마음으로는 결혼생활을 시작할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집이라는 손을 내밀었지만 그는 잡지 않았다.

벼랑에서 떨어지던 그 순간 내 손을 놓아버렸다.

가장 힘든순간, 그는 그렇게 허무하게 가장 먼저 나를 놔버렸다.

도저히 집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커플링도 할 수는 있는데

집은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아픈몸으로 제대로 돈을 모아 집을 계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울었다.

자신의 월급으로는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순간 깨달았다.

나도 그와 함께하는 미래가 더이상 보이지 않았었다는것을.

그리고 그렇게 내손을 놔버린 그가 이해는 되지만 한편으로 많이 미웠다.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같이 있는 시간마저 무의미 했기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포옹으로 서로의 앞길을 응원하며 헤어졌다.

 

 

 

12시간을 넘게 죽을것 처럼 울었다가도

멀쩡해지기도 하고,

일주일만에 다시 또 울었다가

또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와 아직 연락을 주고 받는다.

왜그런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감정이 많이 남아있는것은 아니다.

다시 사귀고 싶은것도 아니다.

단지 일상적인 대화를 할 뿐이다.

그냥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갑자기 사라지면

엄청난 블루홀이 내 마음에 생겨버릴 것 같아서,

그 공허함을 견딜 수 없을거 같아서.

그도 그런마음으로 나와의 대화를 이어나가는것이 아닐까.

그러면서도 그가 문득문득 밉고

또 다시 짠하다.

 

 

현실에 무릎꿇은 남자와,

그런 남자의 옆에 선 여자.

 

 

아마도 그는 일어서려면 시간이 좀 걸릴듯해서

그런 그를 놔두고 

나는

먼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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