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지독한 여름이다.

 

들끓는 아스팔트와, 뜨겁게 달궈진 베란다의 창살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한방울이 마치 그의 손길 같았고

내 가슴골 사이로 맺혀있는 그 열기가 아쉬워서 물한번 끼얹지 않은채로

그저 침대위에 누워있다.

마치 그와의 섹스가 끝났을때의 그것처럼.

 

여름은 그렇게 지독하게도 그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이 더위가 싫어도, 여름이 싫어도 어쩔 수 없다.

그저 빨리 지나가길 바랄 밖에.

 

아니 사실은 좀더 뜨겁게 나를 녹여주길 기다리고 있다.

그 더위로 내가 옷을 벗을 수 있게,

나를 현기증이 나도록 더욱 덥혀주기를.

 

그렇게 괴로운 마음으로 여름을 환영한다.

 

 

 

 

 


 

 

 

 

 

 

 

 

 

 

 

 

 

그와의 섹스는 사실 항상 좋은 것은 아니었다.

행위 그 자체보다는, 분위기를 더 사랑하는 나에게 있어서 그와의 섹스가 즐거웠던 이유는,

섹스할때만큼은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팔로 나를 안고, 내 머리가 침대헤드에 부딪히지 않게 손으로 내 머리를 감싸는

그의 섬세함은 나를 흥분하게 하기 충분했다.

반대로 여유가 없는 그의 허리는 나에게 점점더 밀착해오는것이 또 굉장히 야했다.

 

 

어제 그와 마주앉았을때, 나는 그와 잠자리 하던 때가 생각나서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흘끗흘끗 그의 넓은 어깨를 쳐다보면서 지난날이 생각나서 가슴이 쿡쿡 쑤셨다.

사람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그를 보면서,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는걸 다시금 알게되었으며,

그렇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웃픈 내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참 어려웠다.

 

 

나를 자극하던 그 손끝과, 나를 감싸던 두 팔, 나를 안던 그 넓은 가슴.

내가 입을 맞추던 붉은 입술과, 내가 손끝으로 쓸어내리던 등과, 내가 움켜쥐었던 허리.

저것이 다 모두 내것이었는데.

나만 아는 그의 모습들이 많아서 자꾸만 아는척이 하고 싶었다.

그의 이야기에 남들과는 다른 공감. 과도한 리액션.

사람들의 대화는 백색 소음처럼 내 귓가에 삐이-하고 울리기만 해서,

어떤 얘기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너의 목소리만 귓가에 박히니, 당연히 나는 너의 속삭임에 눈을 감고 집중할 수 밖에 없어.

 

 

하지만 또다시 원점.

 

 

아무리 웃으면서 얘기를 해도, 평소처럼 하려고해도

자꾸만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나.

그 겨울에 나를 안아 녹여주던것처럼, 다시 안아주면 안될까.

나는 이제 용기를 낼 자신도, 힘도 없어.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면 안될까.

 

차라리 그곳에 내가 없음을 누구보다 먼저 눈치채면서 기대를 심어주지마.

차라리 나와의 대화가 불편하다고 말해.

 

 

술버릇도 없는 너란 남자는, 내가 술에 의지하지도 못하게 벽을 세워놓고

먼저 말을 붙일 틈도 안주면서 왜 내가 다시 돌아가는걸 반대하지 않았어.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무관심인지 모르겠어.

한번쯤 술에 취해서 내게 치근덕대준다면, 나도 못이기는척 받아줄텐데.

 

 

나는 또다시 그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다 울어 없어진 줄 알았던 눈물이 터져나온것을 알았다.

 

 

세번째에도 너는 나에 대한 감정에 대해 말해주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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