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된지가 벌써 한달남짓 되었다.

감정적으로 한번씩 울컥 올라올때를 제외하고는 아주 순탄한 이별이었다.

그 감정이라는것도 그 남자에 대해서 생각한다기보다는 그냥 내가 불쌍하다는,

잘 헤어졌다는, 하지만 그럼에도 혼자인게 그냥 아쉽다는 그런정도.

요컨데 그 남자에 대한 생각은 내 마음속에 별다른 지분이 없는듯하다.

 

 

 

 


 

 

 

 

 

 

 

 

 

 

 

썸을 탄다거나 연애를 시작하는 초기에는 어떻게든 스킨쉽의 단계를 발전시켜나가고 싶어진다.

물론 상대방의 동의만 있다면 사귀기 전에도 이미 섹스를 할 수는 있지만,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몸이 아닌 마음을 얻고 공감해나가고 싶은거니까 그런짓은 잘 하지 않겠지.

근데 갑자기 궁금하네. 왜 좋아서 만나면서 시작부터 섹스를 하는건 사회적인 통념에서 약간 어긋나는거라고 생각할까?

처음만날땐 섹스까지 생각하지 않고 만나나? 나는 소개팅을 하면 이사람과 잘 수 있을까 생각도 하는데.

막상 사귀다가 못자겠다고 헤어지면 그게 또 무슨 병신같은 변명이야. 그냥 마음에 안들었던거지.

그치만 개인적으로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하나하나 스테이지 깨듯이 손잡고 팔짱끼고 껴안고 뽀뽀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소중하다고는 생각한다. 솔직히 섹스를 한 뒤부터는 이사람에 대해 설레는 마음이

많이 줄어들게 되는게 사실이니까. 그냥 편해지는거지.

 

 

나는 스킨쉽에 관대한 편이며, 손이 아주 못되가지고 자꾸 건드리고 만지는데 익숙한 사람이다.

그래서 만약 내가 스킨쉽이 없어진다면 그사람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건 곧 헤어질 징조를 보이는 것이다.

당연히 손길이 안가는데 섹스가 하고 싶을까. 입술을 맞추고 살을 부비고 싶기는 할까?

 

 

한달.

신기하게도 나는 한달간 그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애정이 식어버린다.

처음엔 그사람과 내가 같은 울타리 안에서 지내는 느낌이면 한달을 안보게 되었을때는

내가 그 울타리 밖에서 나와 한발짝 뒤에서 그를 보게된다.

좋아서 어쩔줄 모르고 집에 온 주인 반기는 강아지마냥 꼬리를 흔들다가, 나중엔 멀찌감찌 뒤에서 지켜보는 입장으로

이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객관적 시선에서 판단을 하게 되는것같다.

남들은 다 보이는 단점, 나쁜버릇들을 비로소 확인하게 되는 시간.

 

 

그렇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콩깍지가 벗겨진다.

그 사람을 감싸고있던 장점들을 뚫고 단점이 튀어나온다.

 

 

내가 남자 D와 이별을 마주했을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뭐였나면

 

 

'섹스하고싶을땐 어떡하지?'

 

 

단순히 그냥 섹스가 하고 싶은거라기보다, 섹스를 통해서 얻는 자존감과 자신감을 더이상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나는 여자는 사랑을하고 섹스를 하면 예뻐진다고 생각해왔다.

자신감에 찬 여자는 그 얼굴이 어떻든, 몸매가 어떻든 매력적이다.

나는 내 섹스가 스스로에게 만족스럽고 나를 멋진 여자로 만들어주는 일종의 마법같은거였는데

마치 어떤 기분이었냐면, 백설공주가 더 예쁘다고 말하는 마법의 거울의 독설을 들은 왕비같은 심정.

그래서 괜히 대상없이 화가나고 속상했다.

 

 

그럼 단순히 섹스만 할 수 있으면 되는거 아닌가?

섹스 파트너를 만들면 되잖아!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섹스 파트너는 함부로 만들 수 있는것이 아니다.

서로에 대해서 연인보다 더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하고, 선을 긋는게 필요하다.

제일 중요한건, 파트너와의 섹스로는 육체적 쾌락은 즐길 수 있어도 마음은 달랠 수 없는 범위에 있다는 것.

마음까지 나누는 섹스파트너라면 그건 파트너가 아니라 애인이고.

 

 

크리스마스가 2달도 채 안남은 와중에 나는 아직 혼자.

친구들과, 지인들과 종종 만남을 하고 있지만 그걸로는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이 있다.

누군가를 만지고 안고 포옹하는거는 애인이 있어야 가능하다보니

그걸로 채워져야 하는 부분들이 채워지지 않아서 느끼는 외로움이 크다.

설레는 마음도 없이 점점 차가워져가는 계절은 나도모르게 코트를 여미고 마음까지 닫아버리게 하는것같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섹스생각이 나지않았다.

심지어 자위도 하지않았다. 시도했으나 잘 안됬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발기가 안되는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 사랑이 고프다.

하다못해 누구라도 만날수있게 소개팅좀.

솔직히 크리스마스를 스키장에서 아는 언니하고 보내고 싶진 않아.

근데 왜 나 여기저기 헤어졌다고 말하고다녔는데 소개팅도 안들어오냐.